가을맞이#12
KENWOOD
경상도
7
9,698
2006.10.24 09:30
해변 -임혜신-
당신이 왔습니다
병든 당신이 내게로 다가 와 늙은 조개처럼
입고 있었던 두꺼운 껍질을 벗었습니다.
소문처럼, 당신의 병은 깊었습니다.
심장은 금이 가 있었고
위장은 텅 비어 아무런 먹이의 흔적조차 없었습니다
의사도 아니고
주술사도 아니고 당신을 위해
준비한 것도 없는 나는 몹시 당황했습니다
창백한 물안개에 둘러싸인 채
당신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
당신의 몸 위에 외로운 칼끝처럼 놓인
달빛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
어찌 할 방책 없는 내 사랑의 손끝에서
병든 입술이 노래할 리 없고
병든 폐부가 수초처럼 신비럽게
일렁일 리도 없었습니다
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흐르고 일년이 흐르고
나의 두려움도 백년에서 천년으로 흘렀습니다.
단지 한 순간
젖은 모래에 닿는 나의 무력함이 참으로 차고
신선하게 느껴지던 그 짧고 격렬한 고통 속에서
나는 들었을 뿐입니다
언뜻, 언뜻
흘러다니는 당신의 목소리를
"사랑하는 자를 버려두기에 이보다 더 황량하고
마땅한 장소는 일찍이 없었느니라"